8평의 공간에서 만들어낸 예술… C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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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종합학교 창작그룹 CDY의 윤혁(왼쪽), 김소현(오른쪽) 작가

고승희 기자 · 사진 박형인, 톰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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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 앞 공간에서 두 사람은 꾸준히 가방을 만든다.

8평짜리 아틀리에는 지금 CDY(윤혁, 유동훈, 김소현)가 가진 가장 큰 가방이다. 서울 약수동의 오래된 골목에 자리 잡은 이곳에는 CDY(한국예술종합학교 창작그룹)가 지내온 6년의 흔적이 빼곡히 저장돼있다. 학생 시절부터 쌓인 시간들이 박음질돼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다.

출발은 2013년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선후배인 윤혁 (28)ㆍ유동훈(28) 작가는 그 시절 미술학도로서 느낀 간극을 좁히기 위해 가방을 만들었다. 같은 고민을 가진 김소현(23) 작가는 2015년 학교 입학 이후 두 사람과 함께 했다.

  “처음엔 반항이랄까요. 기존 학교 분위기에서 탈피하기 위해 시작했는데, 어느새 6년이 됐어요. 가방은 작은 공간이에요. 그 시절 우리에게 가방은 가장 손쉽게 만들 수 있었던 사적인 공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엔 건물을 사거나 집을 살 수는 없었으니까요.” (윤혁)

가지고 있던 바지 한 벌을 자르고 해체했다. 손때 묻은 미싱으로 만든 가방은 지금의 CDY를 있게 한 첫 제품이자, 작품이었다. 리사이클드 아트(recycled art)의 시작이기도 했다.

“유일하게 뭔가를 뉘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거였죠.” (윤혁)

 몇 년 새 공간의 규모는 부쩍 커졌다. CDY의 두 번째 출발이 다. 새로운 발돋움을 위해 2nd CYCLE(세컨드 사이클)이라는 이름을 덧댔다.

 “기업들은 5~7년 주기로 자기들의 모든 것을 환골탈태해야 한대요. 우리에게도 그 시기가 온 거예요. 개인전 (2017년 생활잡화전, 아트스페이스 담다) 이후 선택을 해야 하는 시기요. 순수 미술을 할 것인가, 사회로 녹아들 건인가 고민해야 했어요.”

 그 시기 두 사람은 ‘가방 가게’를 만들자는 목표를 세웠다. 그간의 모든 작업을 매뉴얼화하고, 커리큘럼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2018년 문을 연 아틀리에 ‘세컨드 사이클(2nd Cycle)’이다.

두 사람은 이곳에서 낡은 바지를 재활용해 가방을 만든다. 가방을 만들고 싶어 하는 이들의 ‘선생님’이 돼 수업도 진행한다. 자기만의 가방을 만들기는 원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맞춤형 가방’을 제작한다. 이 8평의 공간을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색다른 세상을 경험한다.

 “이 유리막 안에서는 오차도 없고, 틀린 것도 없어요. 잘못된 것도 없고요. 이곳은 바깥과는 다른 ‘섬’과 같아요. 그냥 하면 되는 공간이에요.” (김소현)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손으로 작업한 가방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담긴다. 가방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곳을 찾아 자기들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어떤 사람들에겐 한 번도 뱉어본 적 없는 진짜 ‘자기’ 이야기다.

“온갖 취향의 범벅들이 나오기도 하고요. 각자의 경험과 사건들을 이야기해요. 저희는 그걸 열심히 기록하고, 가방을 만들 때 선택사항처럼 조합해요. 그 과정에서 우리의 미감이 들어가는 거죠.” (김소현)

주문을 의뢰한 사람들이 입던 바지 한 벌을 챙겨와 가방을 만들면 의미는 눈덩이처럼 커진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한 시간은 훌쩍 가요. 그런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방 어딘가에 박제하는 거예요.” (김소현)

 기성 제품과는 달리 한정된 재료 안에서 최상의 조합을 만드는 ‘게임’같은 가방 만들기는 순수미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허물었다.

“학교에선 미술도 아니고, 상업도 아니라고 선택을 강요받던 때가 있었어요. 미술 같은 미술이 뭘까, 우리가 가방을 만들어 파는 것이 문제일까, 상업과 디자인, 순수미술을 나누고 우리를 어딘가에 고착시켜야 하는 건가, 의문이 들더라고요.” (김소현, 윤혁)

 6년이 흐르자 사람들은 그들을 촉망받는 젊은 작가라고 부른다. 그들이 만드는 가방은 제품인 동시에 작품이 됐다.

“사람들이 저희를 작가라고 부르는 이유는 저희가 지금 느끼는 분노나 감정을 작업 안에 담아 만들기 때문인 것 같아요. 공장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저희가 만들기 때문에, 자유롭게 매번 다른 것을 만들 수 있고, 매번 다른 감정을 담을 수 있어요.” (윤혁)

 두 사람이 그리는 내일은 거창하지 않다. 입던 바지와 미싱, 고운 빛깔의 실만 있다면 CDY의 작업은 계속된다.

“작가로 불리든, 디자이너로 불리든 상관없어요. 그건 외부가 우리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불러주는 거니까요. 저희는 그저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일을 열심히 하자’는 생각이에요. 지금 하고 있는 이 행위를 지속시키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아요. ‘어떻게 하면 하루라도 더 여기에서 가방을 만들까’ 하는 거요. 성실하게, 매일 매일 손으로 할 수 있는 이 일을 꾸준히 지속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 일이 미워지지 않게요.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건 너무나 당연한 거고요.” (김소현)

“가방을 만들면 어마어마하게 돈을 벌 거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어요. 이게 판타지라는 것을 알아요. 그런 헛된 상상은 이제 하지 않아요.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의 가방을 만들고, 그래서 더 단단해지고, 내가 내뱉는 것들이 조금 더 힘을 갖게 되기를 바라면서 매일 매일 이 공간 구석구석에 애정을 쏟고 있어요.” (윤혁)

 윤혁 작가는 입던 청바지를, 유동훈 작가는 어머니가 쓰던 재봉틀을 가져와 가방을 만들었다. 가방을 만들며 규칙을 세웠다.

  1. 바지만 쓸 것 (재료비는 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2. 부자재를 쓰지 말 것
  3. 떳떳하고 깨끗하게 가방만 만들 것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입히기 위해 만든 지퍼, 단추와 같은 상업적인 방식도 배제했다. 가방을 가방이라고 부르지도 못 하던 시절이었으며, 가방을 만들었지만 내심 오브제로 느끼길 바라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 결과 끈 1쌍, 본판 1개, 주머니 1개로 이뤄진 가방이 태어났다. 이른바 OBOJ (One Bag by One Jean)이다.

윤혁 작가가 20대 중반 무렵 남긴 작품이다.

“연애를 많이 했을 때였어요. 모든 연애가 다 실패하면서 성찰을 한 작품이에요.”

 새로운 전기를 맞은 이들의 작품은 조금 달라졌다. 현 바지를 재활용해 만들고, 부자재를 쓰지 않던 가방은 각자의 주인들을 만나며 어느 정도 타협을 시작했다. 편리한 사용을 위해 지퍼를 넣었다. 바지로만 만든 가방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안감은 합성섬유를 쓴다. “학교를 나와 영업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사회인으로의 역할을 해야 하니까, 엄격하게 지켜졌던 것들이 풀어지는 거죠. 자연스러운 과정인 것 같아요” 그럼에도 CDY의 가방은 어디에서나 눈에 띈다. “지하철에서 선생님 가방 봤어요” 이런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가방 안엔 CDY의 이야기가 숨어있기 때문이다.